메뉴 건너뛰기

상봉하신분들

'형준이'아빠, 연락주세요...

bjworld 2018.10.30 16:16 조회 수 : 176

'형준이' 아빠, 연락주세요...아들이 죽을지도 모릅니다
미국 입양 청년 '살인죄'로 기소... 유아시절 증언하면 감형될 수도
12.03.13 11:45 ㅣ최종 업데이트 12.03.13 13:09 제인 정 트렌카 (track)
 
 
  
애리조나주의 모든 사형 집행은 사진에 보이는 애리조나주 교도소 사형 집행실에서 집행된다.
ⓒ 해외입양인모임
사형수

 

미국 애리조나 주의 모든 사형수는 마지막 음식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예를 들면 지난 3월 초 사형당한 수감자는 죽기 전에 달걀 4개, 소시지, 육즙, 감자, 과자, 초콜릿 우유를 선택했다. 트렌트 벤슨은 1971년생 한국계 미국 입양인이며, 애리조나 주 교도소에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129명 수감자 중 1명이다. 벤슨은 2명의 매춘녀를 살인해 사형 선고를 한 번도 아닌 두 번 받은 상태다. 지금 벤슨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다른 한국계 미국 입양인은 한국 친부모를 찾을 수 있다면 사형 집행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지미'라고 불리는 제임스 클레이톤 존슨은 1983년 8월 2일 한국의 손인옥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미혼모의 몸에서 태어난 지미는 동방아동복지회를 통해 콜로라도 주에 사는 한 불임 부부에게 입양됐다.

 

지미가 15세 때, 그는 콜로라도 주 콜롬바인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1999년 4월 20일, 이 학교 고등학생 2명의 무차별 사격으로 12명 학생, 1명 교사가 사망했고, 24명 학생이 부상을 입었다. 그 후 가해 학생 2명은 자신의 총기로 자살했다. 콜롬바인 고등학교 재학 시 지미는 무장강도, 절도, 위조행위로 체포된 바 있었다. 그 후 2010년 12월, 애리조나 주의 마사지 업소에서 죽은 채 발견된 42세 아시아 여성의 죽음과 관련 있다는 이유로 지미는 체포되었다.

 

성폭력 희생자인 나, 성폭력범 지미 위해 법정 증언 

 

 

  
트렌트 벤슨은 1급살인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 해외입양인모임
사형수

 

그녀는 목과 가슴에 여러 번 칼로 찔린 흔적이 있었다. 현장에 있던 감사 카메라와 DNA 조사 결과, 지미가 가해자로 밝혀졌다. 2011년 2월, 애리조나 주는 이 사건이 1급 살인으로 확정되면 지미에게 사형을 집행할 것이라고 공지했다.

 

트렌트와 지미는 더이상 귀엽고 입양 가능한 아동이 아니다. 그들은 유명한 입양인 운동선수, 정치인, 연예인, 학자가 아니다. 한국을 방문하여 한복을 입고 한식을 먹는 해외 입양인들 사진에서 우리는 트렌트나 지미를 볼 수 없다.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해외 입양인 모임행사에서도 멋진 양복을 입은 트렌트나 지미의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없다. 그들은 입양인이지만 다른 입양인들도 전혀 만나고 싶지 않은 입양인이다. 역설적으로 나는 그런 이유로 트렌트와 지미에 대해 관여하게 되었다.

 

트렌트의 감형을 위해 노력하는 한 전문가가 트렌트를 돕기 위한 여러 시도가 실패한 후 내게 연락을 했다. 애리조나 주 법률팀은 한국에 있는 해외입양인모임(TRACK)을 인터넷을 통해 찾았고, 내가 쓴 입양에 관한 책 <피의 언어>를 읽고 있었다. 그 법률팀은 트렌트의 한국 친가족을 찾기 위해 한국에 온 미국인을 도울 사람과 미국법정을 위해 입양문제에 관해 증언할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그 법률팀은 내가 적임자라고 생각한 것 같고 그래서 내게 연락이 온 것이다.

 

 

처음에 나는 그들의 요청에 비협조적이었다. 트렌트가 강간·납치·살인죄로 기소되었고 내자신이 성폭력의 희생자였기 때문에 나는 그런 트렌트를 위해 법정에서 증언하고 싶지 않았다. 트렌트가 기소된 범죄 하나는 섬뜩하게도 내가 희생자로 겪은 것과 너무 비슷했다 (다행히도, 나와 같은 대학에 다녔던 내 가해자는 체포되었고, 그는 지금까지도 21년간 수감 되어있다).

 

또 하나 이상하게 비슷한 것은 트렌트와 나는 같은 입양기관을 통해 같은 시기에 미국에 입양 보내졌고, 같은 주 같은 지역에서 성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통점은 내게도 큰 충격이었다. 나는 여러 친구에게 내가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관하여 많은 조언을 구했고, 많은 시간을 생각한 후 결국, 트렌트를 위해서 미국법정에 증언하기로 했다.

 

그러나 내가 트렌트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무엇을 증언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애리조나주 법무팀은 한국에서 그의 가족을 못 찾았다. 그 후 그들은 내게 한국입양제도와 입양인으로서 미국에서의 내 생활에 대해 물어봤다.

 

어느 날 비디오콘퍼런스를 통해서 아침 7시 30분, 서울에 있는 내 집에서 미국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트렌트를 위해 최선을 다해 증언했다. 그때 애리조나 주는 오후 시간이었다. 그로부터 몇 주 후, 나의 노력에도 소용없이 트렌트가 사형 선고를 받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입양인이 무슨 일을 저질렀건, 친부모를 알 권리가 있다

 

  
지미 클레이톤 존슨 (최형준)
ⓒ 해외입양인모임
사형수

 

만약, 트렌트의 친가족이 출생 후 3년 동안에 대해 증언을 할 수 있었다면 트렌트의 사형선고는 종신형으로 감형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유아기의 외상(트라우마), 병력 등은 "감형 요소"가 될 수 있고, 그 증거가 법원에 제출되면 선고가 경감될지도 모른다.

 

한편, 지미의 법무팀이 지미 생애에 대해 자료조사를 시작했을 때, 그들도 지미를 위해서 가능한 대로 감형 요소를 포함하려고 했다. 그 과정 중 지미의 법무팀은 트렌트 경우와 같은 문제에 직면했다. 그래서 지미 법무팀은 다시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번에 나는 주저 없이 지미를 위해 증언하겠다고 했다. 트렌트를 위해 증언하면서 나는 입양인이 무슨 일을 저질렀건, 입양인은 친부모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2011년 11월부터 애리조나 주 감형 전문가가 한국의 동방아동복지회와 연락을 주고받을 때, 동방아동복지회는 지미의 친부모를 찾는 것에 대해 '정부'에 위탁했다고 주장했다. 동방아동복지회는 '정부'가 지미의 친부모로 의심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 편지 내용을 모른다. 그러나 내 경험에 의하면, 입양기관은 친가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 지난 3월 8일 동방아동복지회는 지미의 친부를 찾았다고 내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내게 지미의 친부에 대한 연락처는 알려 줄 수 없다고 했다. 아마도 지미의 친부는 지금 자기 아들이 두 달 안에 미국에서 사형재판을 받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지미의 경우, 나는 친부모에 대한 정보 비공개정책에 대해 강력히 반대한다. 이번 경우에 지미의 친가족 찾기는 엄마가 "남편이 죽은 후 아들을 찾겠다"라거나 "지금 살고 있는 자녀에게 먼저 말 한 다음에 생각해 보겠다"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 입양인의 생사가 걸린 문제다. 지미의 사형재판은 두 달밖에 안 남았고, 그 전에 감형 요소에 대한 증거를 법정에 제출해야만 지미가 감형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 2월 28일 보건복지부에 이와 관련한 이메일을 보냈고, 지난 3월 6일 보건복지부 저출산고령사회정책실 아동복지정책과 이경은 과장과 이와 관련하여 통화했다. 이 과장은 "이메일을 받았지만, 동방아동복지회가 지미의 친부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도록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내가 지미의 법적 대리인이라고 밝혔는데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 과장은 "곧 사형당할 아들에 관한 나쁜 뉴스를 동방아동복지회가 지미의 친부에게 전달하도록 정부는 강요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보건복지부가 각 입양인을 위해서 간섭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국입양홍보회에 따르면 지난 3월 5일 보건복지부는 금년도 아동의 해외 입양에 대한 출국허가를 했다. 아동에 대한 출국허가는 보건복지부가 각 입양아에게 개인적으로 간섭하는 것이 아닌가? 보건복지부는 한국 아동을 해외 입양 보내는 일에는 사설입양기관과 적극 협조하고 간섭하여 일한다. 이에 반해 입양인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있어서 보건복지부는 사설입양기관에 대해 간섭할 아무런 권한과 힘이 없다고 주장한다.

 

나는 지미의 한국 친부모님께 요청한다. "어디에 계시든지 빨리 지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앞으로 나서 주세요!" 라고. 지미의 한국 친부모는 한때 지미에게 생명을 주었다. 나는 그 친부모가 지미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길 요청한다.

 

입양은 친모·아이 모두 정신적 상처 갖는다

 

  
지미는 1급 살인으로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사형선고를 받을 것이다.
ⓒ 해외입양인모임
사형수

 

2002년 스웨덴 학자들이 발간한 '스웨덴 해외 입양인의 자살, 정신병, 사회부적응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스웨덴에 살고있는 해외 입양인들은 사춘기와 청년기에 심각한 정신 건강 문제를 가질 위험이 큰 것으로 나와 있다. 이들은 자살·자살시도·정신병·약물이나 알코올 중독·범죄를 자행할 가능성이 일반인보다 훨씬 높게 나와 있다.

 

미국엔 국가의료보험제도가 없어서, 입양인들의 건강에 관한 종합보고서나 전국통계자료를 구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심리학자이며 자신이 입양 엄마인 낸시 베라는 그녀의 책 <원초적 상처: 입양아 이해하기>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캘리포니아, 샌티에나의 육아 방법의 1985년 통계에 따르면, 비록 당시에 입양인들이 전체 인구의 2~3%에 불과했지만, 치료센터, 소년원 그리고 특수학교 등에서 입양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무려 30~40%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입양인들은 청소년 범죄, 섹스 그리고 가출 등의 문제에서 일반인보다 훨씬 더 높은 발생횟수를 보여주었고, 학교생활 (학업과 교우관계)에 있어서도 비입양인들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 입양인들은 충동, 도발, 공격 그리고 반사회성과 같은 비교적 일관된 징후들을 지니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혈통이 나빠서" 탓으로 돌릴지 모른다. 그리고 친부모가 자녀에게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물려줬다거나 입양 부모의 자녀 양육 방법이 잘못된 탓으로 돌릴지 모른다. 그러나 베라는 이러한 원인은 "원초적 상처"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원초적 상처는 "육체, 감정, 심리, 영적" 상처로 아동이 친모와 어렸을 때 이별을 겪을 때에 생긴다. 베라는 "모자 관계의 중요성이 미래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고 지적했다.

 

내가 "원초적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은 트렌트나 지미와는 달랐다. 그러나 입양인들은 모두 이 원초적 상처를 갖고 있다. 우리 입양인들은 아주 어린 나이에 친엄마로부터 강제로 이별 당한 공통 경험이 있다. 당시 아기와 엄마는 거의 '일심동체'다. 그런 상황에서 친엄마와의 강제적 이별과 분리는 마치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박멸시키는 것과 같다.

 

2007년 <타임스>는 생후 4개월 단 "'옥'이라는 한국 아기가 네덜란드 부부에게 입양되었지만, 옥이 8살이 되었을 때 그 입양은 실패로 끝났다"고 보도했다. 또 "옥이가 비록 생후 4개월 후 친부모와 헤어져서 해외 입양되었지만, 입양이 실패로 끝났을 때 옥이는 심각한 애정결핍과 두려움증 진단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입양아는 때때로 애정결핍장애자로 진단되고 일반인과 달리 정상적인 감정적 유대감을 형성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보도했다. <타임스>는 또한 "10세 이하 10% 의 영국 입양은 실패로 끝나고, 네덜란드 경우 사춘기 해외 입양인은 같은 또래보다 감정장애와 약물남용문제에 훨씬 더 취약하다"고 보도했다.

 

입양으로 아이를 잃은 친모도, 입양 보내진 아이만큼, 그 이별 때문에 명백하고 심각한 정신적 상처를 받는 것으로 나타난다. 입양으로 아이와 이별한 한국 친모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는 미국 뉴욕시티대학의 김호수 교수는 자기가 인터뷰 한 친모 11명 중 4명은 아기를 입양 보낸 후 자살을 시도했다고 내게 말했다. 김 교수 연구에 나오는 한 친모의 진술이다.

 

"내 아기가 입양 보내진 후 그 입양기관 사무실 2층에서 내가 투신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아이가 입양 보내진 후 나는 자살을 계획했다. 그래서 나는 약을 먹었다. 난 아기를 입양 보낸 후 자살할 계획을 짰다. 이 생이 싫었다. 당시 나는 내가 뭘 하고, 뭘 먹고, 어디 가는지도 몰랐고 한 잠도 못 잤다. 나는 미쳐 있었다."

 

또 다른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를 입양 보낸 나와 친구는 둘 다 우울증에 걸렸다. 자녀를 입양 보낸 후 우리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상태는 점점 악화 되어갔다. 그 후 나는 못으로 내 몸에 자해를 가했다."

 

서구에서 국내 입양을 보낸 친모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자녀를 입양 보낸 후 친모는 장기간 심리적 후유증을 겪고, 오랜 세월 공허감에 시달린다. 이러한 친모의 후유증은 그 후에 태어나는 아기에게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입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이를 입양 보내지 않고, 친모와 아동이 함께 살 권리를 국가가 보호해 주는 것이다. 이 말은 미혼모를 위한 지원을 정부에서 과감하게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미혼모와 그 자녀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없앨 수 있도록 정부는 대대적 캠페인을 하고, 아기 아빠는 아기를 키우는 미혼모에게 자녀부양비를 지급하도록 해야 한다.

 

토드, 한국에서 살던 곳 기억해 내는 것이 유일한 친가족 찾기 단서

 

  
'고아'로 등록 되었다가 입양 보내진 후 그는 토드 타셀리(Todd Tarselli)가 되었고 지금은 교도소에 있다.
ⓒ 해외입양인모임
사형수

 

입양인과 관련된 폭력사건도 있다. 1978년 미국인 짐 존스는 자신의 컬트 교도 913명을 데리고 집단 자살했다. 사람들은 이 사건을 '존스타운 학살'이라고 부르는데 당시 200명 이상의 아이가 희생되었다. 인종적으로 '무지개 가족'을 만들기 위해 짐 존스는 유색인종 아이들을 몇 명 입양하였다. 그 중 3명의 아이는 한국에서 입양했다. 결국, 3명의 한국 아이는 선택의 여지없이 학살된 것이다.

 

2008년, 미국 아이오와 주의 입양부 스티븐 수펠은 그의 처와 3, 5, 7, 10세의 자녀를 야구방망이로 때려죽인 후 자살했다. 2007년 인디애나주의 13개월 된 입양아가 입양모 레베카 크레의 구타 때문에 머리 상처를 입고 사망했다. 1991년 펜실베이니아주의 14세 입양인 키스 철 위버는 입양 부모를 칼로 찌르고, 한국에서 온 입양 여동생을 칼로 찔러 죽인 후 10대 친척 소녀를 강간했다. 그 다음 해인 1992년 같은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입양인 토드 형래 타셀리는 17세의 친구를 살해했다. 

 

미국에 있는 한국계 미국인 친구가 토드를 내게 소개해 주었다. 토드는 내 친구를 만나기 전, 지인을 통해 한국 친부모 찾기를 시도했다. 토드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여러 곳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트렌트와 지미처럼 토드를 도와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침내 한국말을 잘하는 미국인 변호사가 토드 친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에 왔고, 토드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토드 친부모를 찾을 수는 없었다. 

 

마침내, 토드는 6~7세 정도일 때 해외입양되었기 때문에 자기가 어려서 한국에서 살던 곳을 기억해 내는 것이 유일한 친가족 찾기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토드에게 토드 고향의 항공 사진을 보내 주었고, 그 사진을 본 토드는 그 장소를 알아봤고 자기 고향이 강원도 속초시 청조호 근처라고 진술했다. 나는 토드도 다른 모든 입양인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1972년 찍은 항공사진. 토드는 강원도 속초시 청학동 청조호 서북쪽에 자기가 살던 집이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사진화살표)
ⓒ 해외입양인모임
사형수

 

 

그러나 토드는 입양 보내진 후 한국에 온 적이 없고 다시 올 가능성도 없다. 그는 1992년 살인으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 선고를 받은 후 지금 20년째 주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그 중 9년 이상을 토드는 독방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수감자들은 이 독방을 '구멍'이라고 부른다. 공식 이름은 '컨트롤 유닛'이며, 교도소시설개선 운동가들은 이 독방시설이 재소자들에게 정신적 고문을 가하는 것이고 병리학적 후유증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토드가 그린 교도소 독방 '콘트롤 유닛'의 모습
ⓒ 해외입양인모임
교도소

 

비록 토드는 사형선고를 받지 않았지만, 수감된 펜실베이니아 주 교도소엔 펜실베이니아 주 전체 사형수 206명 중 160명이 수감되어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토드가 수감된 교도소는 1990년대 교도관들이 수감자를 거칠게 다루며 "괴롭히고, 모욕을 주며, 폭력을 가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이 교도소의 교도관이었던 찰스 그레너는 2003년과 2004년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악명 높은 고문을 한 교도관이기도 하다. 당시 언론에 나온 교도관 그레너는 고문을 받고 있는 재소자 옆에서 밝게 웃는 모습을 하고 있다. 전기 상자 위에서 검은 포대를 쓰고 손가락, 발가락, 성기에 전선이 감겨있는 이라크 포로의 모습을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다른 고문으로는 남자 재소자들의 남색 행위, 옷 벗기고 서로 위에 올라가게 하기, 음식을 변기에 버리고 먹게 하기 등이다. 그레너 교도관은 2005년 10년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6년 반 후 석방되었다. 토드는 이런 교도관들 밑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아동을 친부모와 떨어지게 하는 입양... 잔인한 비인도적 행위

 

입양인이 겪는 것은 살인적인 폭력만이 아니다. 입양인은 입양 부모와 부적절한 성관계에도 시달린다. 예를 들면, 영화감독 우디 알렌은 아내 미아 페로우와 한국 여자아이 순이를 입양했지만 결국 우디는 아내와 이혼하고 자기 입양 딸 순이와 결혼한다. 우디 알렌과 미아 페로우의 친아들 로난 페로우는 "아버지는 내 여동생과 결혼했다. 아버지가 내 여동생과 아들을 낳으면 그 아이 촌수는 나와 어떻게 되나. 이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2004년 입양인이 서울의 한 건물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 입양인의 사인을 모르지만 해외로 보내진 입양인은 일반인보다 성적학대, 알코올 중독, 약물중독, 추방, 자해, 애정결핍, 섭식장애, 피괴된 가정, 폭력, 인종차별 등에 훨씬 더 많이 시달리고 고통을 겪고 있다. 어떤 입양인은 미국 시골에서 인종차별을 벗어나고자 군대에 입대하지만, 군대에서 그 입양인은 국가 폭력의 증인이나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친가족과 강제로 헤어진 후 해외로 보내진 많은 입양인은 이런 파란만장한 삶과 폭력을 겪는다.

 

이제 한국정부와 한국인들은 입양에 대해 더 복잡한 시각으로 봐야 한다. 정부가 어떤 이유에서건 아동을 친부모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야만적이고 잔인한 비인도적 행위다. 많은 과학적 증거들이 입양이 얼마나 아이들과 엄마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두뇌발달, 인간관계, 정서불안정 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고 있다. 한국정부는 이제라도 아동과 친모의 권리를 배려한 정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국정부와 입양기관은 입양을 홍보해서는 안 된다. 아동이 친부모와 함께 자랄 수 있도록 복지 정책을 펴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며 모든 인간은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살 보편적 권리를 갖고 있다.

 

한국인은 입양이 행복을 향한 길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이러한 착각으로 미혼모와 아기는 지금도 생이별을 하고 인간으로서 기본권을 박탈당하고 지속적 폭력에 노출된다. 대부분 미혼모는 정부, 고용자, 아기 아빠, 가족, 부모, 사회에서 조금만 지원과 격려를 받으면 얼마든지 스스로 친자녀를 키울 능력과 사랑이 있다. 그러나 신속하고 적절한 사회복지제도를 통해 이들을 지원하기보다는 한국정부는 지속해서 사설기관지원을 통한 입양정책을 선호한다. 이러한 정책은 단기적 이익을 가져올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한국사회에 오히려 해로 돌아온다.

 

어떤 이는 왜 입양인이 적개심이 강하거나, 괴로워 보이거나, 쉽게 분노한다고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내가 해외 입양인으로서 적개심, 괴로움, 분노를 느끼는 것은 내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나는 많은 해외 입양인들은 입양이 초래한 현실의 부당함과 아픔을 매일, 매 순간 느끼며 산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우리 해외입양인들에게 궁금한 것이 "친엄마를 만났어요?" 혹은 "입양 생활이 어때요?"가 전부인 것 같다. 아직 한국으로 오지 않은 혹은 올 수 없는 해외 입양인들을 위해서 내가 대신 답변하면 이렇다.

 

"아니요. 지미는 아직 친엄마를 못 만났어요."

"토드의 교도소 생활은 소름이 끼칩니다."

 

"한국 음식 좋아해요?"라는 질문에 대해선 사형 집행을 앞둔 트렌트를 위해 답변하고 싶다.

 

"트렌트는 한국 음식을 좋아할 기회가 전혀 없었어요. 그리고 트렌트가 사형실 침대에 묶이기 전 아무도 그를 위해 한국 음식을 요리해 주지 않을 거에요."

 

지미의 한국이름은 '최형준'

지미의 한국이름은 최형준입니다. 그는 1983년 8월 2일 오전 8시 40분 손인옥산부인과에서 출생했습니다. 1983년 8월 3일 그는 동방아동복지회에 입소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구두수선공이며 최병구씨로 당시 27세였습니다. 그의 모친은 장선자씨로 당시 23세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지미 부모님은 당시 결혼을 안 했습니다. 친모가 동방아동복지회에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토드의 한국 이름은 김형래입니다. 1980년 1월 16일 그는 동방아동복지회에 입소했습니다. 그는 1973 년 혹은 1974년 출생했습니다. 이미자씨는 당시 그를 돌보았고, 토드의 이모로 추정됩니다.

 

위 기사에 등장하는 해외 입양인들은 사형을 앞두고 지금도 친가족을 찾기 위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입양인을 알아보시는 분은 뿌리의집(3210-2451)으로 연락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제인 정 트렌카는 미국 입양인이며 해외입양인모임 대표입니다. 

 

위로